“의료사고” 일반인은 외쳐도 메아리가 없다!
<해당 수술장면의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본 기사와는 무관함>
지난해 10월 인천의 모 대학병원에서 심부정맥 혈전증 진단을 받아 스텐트 시술을 받은 김모(39)씨는 최근 배우 한예슬씨가 의료사고를 겪은 후 즉각 병원으로부터 사과와 보상 약속을 받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김씨는 시술 후 왼쪽 발가락, 외측부, 뒤꿈치 등의 감각‧운동신경이 손상돼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해당 대학병원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의료사고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씨의 경우 의료사고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하자 차병원재단 측은 즉각적으로 수술 실수를 인정하고, ‘환자의 심적 고통을 이해하며, 책임 있는 의료기관으로서 모든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대부분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병원과 의료진의 즉각적인 과실인정이나 사과, 보상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씨의 사고 이후 “나도 의료사고를 당했다”는 이른바 ‘의료사고 미투’ 제보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단지 미투 만으로 넘어서기엔 의료계의 벽은 여전히 너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오진은 병원 측이 가장 인정하지 않는 의료사고 중 하나다. 지난해 5월 중순 동네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타다 넘어져 오른쪽 손목 골절로 병원을 찾은 박모(7)군은 오진 때문에 치료가 늦어져 수술을 받았다. 당시 박군은 안산의 모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단순 타박상으로 진단 받아 치료를 받은 후 귀가했지만 상태가 악화됐다. 타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손목 성장판 골절’로 판명돼 수술을 받았다. 박군의 어머니 정모(38)씨는 “아이가 성장했을 때 양팔 길이가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병원에 강하게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힘없는 부모를 만난 것이 죄란 생각에 눈물만 난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의료진이 과실을 인정하더라도 총책임을 지고 있는 대학병원 교수가 부인하면 딱히 방법을 찾기 어렵다. 올 3월 장 협착증 증세로 서울 강동의 모 대학병원에 입원한 최모(59ㆍ여)씨는 컴퓨터단층촬영(CT) 도중 주입한 조영제가 장이 아니라 왼쪽 손 부위로 흘러 들어가 수포가 발생하고 피부괴사 위험까지 제기됐다. 당시 시술에 참여했던 수술실 간호사가 실수를 인정했지만, 담당 교수는 “다른 환자들과 동일하게 기계로 조영제를 투입했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병원이 일반인과 유명인에 대해 다른 대응을 보이는 건 병원에 입을 손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유명인의 의료사고가 기사화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퍼지면 그 사건으로 인해 병원 전체 외래, 입원환자 감소 등 병원운영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사과하고 보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반면 일반인 의료사고의 경우 본인이 적극 나서서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알리고 언론에 제보를 한다고 해도 유통 속도는 매우 더디고, 금세 잊혀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저히 부인과 침묵으로 일관하더라도 병원 평판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일반인의 경우 소송까지 간다 해도 경제적인 제약과 정보의 격차 탓에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안 대표는 “설사 피해자가 소송을 걸어도 의학적 지식도 없고, 1, 2년이 넘게 진행되는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중도에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이인재 대표 변호사는 “한 의뢰인이 ‘대형병원의 힘이 이렇게 막강할지 몰랐다‘며 서류를 찢을 때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소송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병원 측에서 의료사고를 낸 의료진과 피해자와의 접촉자체를 금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신생아 4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망한 이대목동병원에서 사건발생 후 처음 했던 일이 사망 환아 보호자 면담이 아니라 기자회견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