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폭력과 비행 뒤에는 우리가 있다.
아침 운동삼아 인근의 공원에 가 보면 전 날 그 장소에 모여 있었던 청소년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연로한 청소담당의 공공근로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늬 타 동네의 소공원 역시 밤이면, 설익어 럭비공 같은 아이들의 낯 부끄러운 행동들이 인근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 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작금의 온갖 매체에 보도되고 있는 심각한 청소년 폭력이나 비행에 대하여 도를 넘어서는 행동이라며 근절할 수 있는 대책마련에 대해 한 소리를 내면서도 겉으로만 보여지는 가시적 모양새일 뿐 일선에서 그들과 진정으로 맞닥뜨려 놓고 그들의 소리가 무엇인가를 듣지 않고, 엇나가고 있는 행동들에 대해 엄히 꾸짖고 제어하려 하는 이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태연히 담배를 물고 가래침을 뱉으며 소주병과 과자 부스러기로 동네를 어지럽히고 있어도 거의가 그들의 시선을 피해 종종걸음을 치고 만다는 가슴 아픈 현실이 존재하여도 우리 찌질한 어른들은 무리지어 군중심리가 팽배 해야만 무슨 보약을 먹은 것 마냥 들고 일어나 겨우 큰소리를 내는 것을 어떻게 얘기하여야 할까…
어느 방송에서 가해 학생의 부모가 인터뷰 했던 내용 중에 지상파에 등장될 만큼의 사안에 피해를 가한 학생임에도 “걔네들이 그 때 아니면 언제 또 해 보겠느냐”…”다 한때지”…하며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고 그 집안을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의 남편…그의 아버지…형제…
왜? 그 사람들이 그 가해 학생을 만들었고 방종 했으며 작금의 이 현실을 만드는데 일조를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 어느날 나의 집 앞에 공중전화가 생겼다.
그 이후 그 공중전화 앞은 몰지각과 몰상식의 경연장이 되어 버렸던 적이 있었다.
욕을하며 전화기를 부수는건 다반사, 심지어 발로 걷어차고 전화선을 뽑아버리고 전화기 앞은 담배꽁초와 가래침, 껌으로 쌓이고 몰래 방뇨를 하고, 토사까지 하며 편의시설이 아닌 흉물스러운 혐오시설로 변하려 할 때 공공관서의 미봉책으로는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여지지 않아 직접 평상을 만들어 놓고 나무 막대기를 들고 위화감을 조성하며 시시때때로 앉아서 감시하고 간섭을 하였고 심지어 주일에 한 번 정도는 파출소에까지 들락이는 상황이 있었다.
아이들이 가래침을 뱉고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호되게 꾸짖었으며 통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작은 폭력까지 행사하며 기틀을 다지고 나니 내가 만들어 놓은 평상으로 동네 분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 공중전화기 앞은 너도나도 솔선하여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곳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우리 기성세대 모두가 가야 할 곳이나 방향을 정하여 주는 파란 신호등이 되어 주어야 함에도 버겁다는 이유만으로 황색신호만 보여주고 있으니 당연 그들은 갈팡질팡하며 럭비공 같은 시간과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기성세대가 자랄 때나 작금의 청소년들이 자랄 때나 모두가 세대가 틀리고 환경이 틀려서 어쩔 수 없다 흔히들 말 하고 있지만 가르침이라는 것은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고 있는가에 대해 너무도 씁쓸할 뿐이다.
수백년전의 고사성어는 읖조리면서도 지금의 교육은 옛날과 다르다 하니 말이다…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라
식당에서 계모임 한다며 아이들은 방관하고 방관된 아이들은 다른식탁의 손님들을 불쾌하게 하고 세팅된 탁자의 도구들을 엎지르며 장난을 쳐도 따끔히 자기자식 한번 혼내는 부모 보았는가?
자식들이 경어를 쓰지 않고 부모를 경시하여도 그저 못 해줘서 미안하고 “우리자식 만이 제일이다”라는 생각 속에 꾸짖지 아니하고 세대가 틀리다는 이유로 그저 자식의 시중만을 제일로 생각하는 우리가 있기에 지금의 문제가 발생 되고 있는 것이다.
인격형성에 문제가 있다 하여 언제부턴가 엄한 꾸중 보다는 타이름을 원칙으로 하고 그 마저 사춘기가 도래되면 어찌할 수 없어 방관 해 버리는 우리가 있기에 말이다.
아이들은 우리처럼 생각이 복잡하지가 않다.
단순한 생각이 교육의 효과로 인해 자꾸만 어른스러워지고 판단 능력이 커 지는 것이다.
똑 같은 수업료를 내고 학교를 다녀도 다른 석차가 나오고 누구는 강하고 누구는 약하게 어필이 된다는 사실과 뒤에서 욕할지언정 일진에는 대항치 못하는 사실은 결국 부모가 차려주는 밥상이나 격식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들의 잘못에 대한 인지능력과 판단능력을 도태시켜버리고 있는 우리 부모들과 기성세대의 잘못이 100%라는 것이다.
미래의 희망이 연예인이 1위인 나라…일각의 시간도 아까운 학생들에게 패거리 심리를 부추키며 깡패를 미화하고 조작된 틀에다 붕어빵 찍듯이 시청각용 1회성 연예인을 찍어대는 기획사가 난립하는 나라…
부유하고, 잘생기고, 공부 잘하고, 싸움 잘하는 학생들 중 제일을 꼽으라고 아이들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싸움 잘하는 힘쎈 아이라 말하는 나라….
그 같은 아이들의 단순한 사고에 대해 대처하는 것은 복잡 다양한 우리들의 사고와 비교해 보면 너무도 쉽게 대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우리는 그저 더 잘 해주지 못한 부모의 마음 때문에 결국 그 아이들 앞에서는 작아져 버리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우리들 사랑스러운 우리 자식들이 예쁘고 귀하다 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위해 묻어놓은 지뢰를 이제는 앞장서서 걷어내어 버려야 한다.
우리는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갈까말까 하는 황색 신호등이 아니라 언제든 이정표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파란 신호등이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혼자 나서기가 두렵다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라도 동네를 돌아보며 “위해 사항”이 없는가도 살펴보고, 잘못된 행동들 앞에서는 엄히 꾸짖기도 하며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어른이 있고 무서운 어른들이 존재 한다는 다소의 교육적 공포감 또한 필요악으로서 조성해야 할 것이다.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이나 예의가 실종된 사실에 대해 청소년들을 꾸짖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 버린 우리들이 그 책임이 크다는 것을 알고 정말이지 청소년들이 행하고 있는 비행의 장소를 목격하고도 일신에 가해지는 위해가 두려워 방관하거나 시선을 피해 지나쳐 버리는 나약한 어른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후일 두렵고 무서워서가 아니라 또다시 자기들의 후손을 위해 참 교육을 실현해가는 터전을 만들어주며 서로서로 안전한 징검다리의 교행을 위하여 날마다 우리는 그 징검다리 돌 틈새에 움직임 없도록 잔돌을 괴어 주어야 할 것이다.
어항속의 붕어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입모양 처럼 전달감 없는 벙긋거림을 이제 그만 멈추고 오늘 저녁상을 물린 즈음이라도 대문을 나서며 한 번 외쳐 봅시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