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로 동냥하면 고개 숙여 복종으로 바치는가
우리는 길을 걷다가 혹은 전철 안이나 시장 통에서 걸인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 하지만 대다수는 그냥 지나치며 그것 마저도 구걸 자체를 혐오스럽게 느낄 양이면 멀찌감치 피해 돌아가기까지 한다.
물론 개중에는 앵벌이꾼도 없진 않겠지만 옛날 보다는 유하면 할수록 나눔은 퇴색하여지고 알량한 베품에도 무형이든 유형이든 대가를 바라는 마음들이 드러날 때는 늦가을 나뭇가지처럼 황량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어느 주일날 피동적인 예배를 드리면서 경건히 머리 조아려 헌금함에 기계적으로 돈 몇푼을 집어넣으며, '일상의 퇴근무렵' 지하도 입구에 백원 짜리 몇 닢 들어있는 때 절은 바구니를 놓고 쓰러져 있는 듯 엎드려있는 걸인을 떠올리며 똑 같은 나눔이며 베품인 것을 장소에 따라 틀려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입가에 씁쓸함이 묻어나는 것에 대한 답을 결국은 구하지 못하고 시간만 때우고 말았다.
점차적으로 율법에 반 하는 회당에 '지푸라기 하나라도 구하고자 하는 태반의 나약함'을 모아 주님의 이름을 앞세워 권위로 동냥하는 회당이 과연 얼마인가…
내가 있는 곳, 내 마음이 곧 성전이라 하셨거늘 넘쳐 나는 병자와 가난한 자를 뒤로한 채 성전건립을 외치며 밤이 되면 빨간 십자가 밭으로 변하는 세상을 무어라 말 하겠는가…
기도 하려거든 네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중에 기도하라 하셨거늘 시상이라도 걸린 양, 아귀 다툼식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고 주님은 무어라 말 하시겠는가…
섬김을 받으려거든 먼저 섬겨라 하셨거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직책에 우선하며 모여서는 형제, 자매, 교우를 외치곤 밖에서는 손해를 감수치 않으려 온갖 물심에 인색하여지는 사람들을 보고 주님은 무어라 하시겠는가…
말라기서의 십일조는 헌금의 수단으로 동원되고 가난한자와 병든 자를 구원하기 보다는 교세 확장에 치중하는 행태들을 무어라 말 하겠는가…
물론 오지나, 보이지 않는 그늘에서 , 또한 선교활동을 통해 머나먼 타국에서 까지 일신을 불태우며 '진정한 율법의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올곧은 분들'에게는 곁눈질 속에 하는 인위적 숙임이 아니라 의당히 절로 고개 숙여짐은 당연한 것이며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이용하여 인가조차 없는 신학교를 수료'하여 하느님의 전령자 임을 자칭하는 이 들에게 피해를 보는 교단이 적지 않다고 보지만 이 또한 교세나 겉 모습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틀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다수가 알고있는 기독교계의 원로 몇몇 분은 국보위를 찬양하고 유신을 지지하였던 바는 우리모두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며 주님의 재산 또는 가난한자 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빵이라 할 수 있는 회당을 세습을 통해 흔들림 없는 권좌를 이루려는 곳이 있는가 하면 병든 자들의 속옷을 빨며 돌아올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곳도 있는 것은 어떻게 말하겠는가…
요사이 우린 의사가 환자를 버렸다고 말하며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사라졌다 말한다.
돈괴를 중시하는 썪은 회당엔 하느님은 당연히 없으며 나약한 양들을 치유하고 돌보아야 할 목자들이 사라진회당에 우리는 줄지어 머리 숙이고 행여 누가 될세라 공손히 바쳐드린다.
손은 이웃과 맞잡고 마음은 나만을 위한 기도를 드리며...
나 또한 오늘도 하루 세끼 곡기를 채우듯 정해진 날 정해진 곳에 놓여있는 반질한 헌금함에 머리 조아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몇 푼을 집어 넣고 돌아섰다.
빈자의 바구니에 나누고 담겨지는 물고기나 빵이 될 것이라 안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