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누는 삶의지게

♣ 오늘도 그리운 아버지...♣

勁草 2010. 2. 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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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전...

 곡기를 끊으신 아버님이 저녁무렵 배가 아프시다며 병원에 가자 하였습니다.

 어차피 10여년을 갖고 계셨던 숙환이었기에 어머님과 저희는 조금만 견디셨다가 월요일날 가자고 하였습니다...

 거듭하여 복통을 호소하시기에 늘상 보여지는 상태로 생각하며 반짜증을 섞어 병원 응급실로 모셨습니다...

 앙상한 뼈마디에 가녀리 붙어있는 핏줄을 찾아 간호사는 진땀을 흘리며 전보다 더 강한 진통제를 투여 하였습니다...

 그래도 고통이 있으신지 일으키라하시고 한참을 고통에 찬 얼굴로 앉아 계셨습니다...

 

 "아버지"..."배가 많이 아프셔요"?

 

말없이 아버님은 고개만 끄덕이셨습니다...

 

부쩍 더 늙어버리신 어머님이 또 곁을 지키신다하여 늘상 하던 것처럼 병원문을 나섰습니다...

 

다음날...

병실로 찾아간 나에게

"우리 둘째 왔구나"...하시며 허수아비같은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곤 제손을 꼭 잡으시고 한참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바쁜데 그만 들어가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병실을 나서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저희로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오래 사셨으니까 너무 상심마시고 후일을 준비 하십시오"...

라는 주치의의 말이 자꾸자꾸 가슴을 저몄습니다...

 

다음날 바쁜 일 때문에 밤 열시가 되어서야 아버님을 뵈러 병원엘 갔습니다.

어머님은 침상에 얼굴을 파묻고 계셨고...

아버님은 호흡기에 의지 한 채 가녀린 숨을 불규칙하게 내쉬고 계셨습니다...

이미 인사불성이 되어버리신 상태로 무슨 여한이 있으시기에 눈물이 가득한 눈을 반쯤 뜨시고 허공을 주시하고 계셨습니다...

 

눈물을 닦아드리고 나무토막같은 다리를 주물러드리며 자꾸만 눈시울이 젖는것을 침을 삼키며 참았습니다...

 

"얘야"...

"목숨은 모질고도 모진것이라 너희 아버지 그리 쉽게 가시지않는다"...

"얼른가서 쉬어야 내일 또 일을 할거 아니냐"...

"여기는 걱정말고 어서 들어가거라"...

"나도 한숨 붙여야겠다"...

하시는 어머님의 말씀에 토막잠이라도 조금 주무시라고 병원문을 나섰습니다...

 

다음날...

오전8시40분경...

어머님의 급박한 목소리가 전화로 울려왔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이제 다 사셨나보다"...

"상태가 많이 안좋아지셨구나"...

"다시 또 전화하면 얼른 오거라"...

하시는 어머님의 말씀에 형제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허겁지겁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가시면 안됩니다"..."그렇게도 살고싶어 하셨잖아요"...

 

병원도착 10분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애비야"..."느그 아버지 지금 운명하셨다"...

 

목이 메이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병원까지 차를 몰고왔는지도 모르고 병실에 들어서서 혹시난 하는 마음에 아버님의 코에 얼굴을 갖다대어

보았습니다...

숨기운은 전혀 없으신대도 몸은 아직 따뜻하였습니다...

흔들어보고 목놓아 불러보아도 아버님은 눈을 뜨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아버님은 우리곁을 떠나가셨습니다...

 

입관식을 할 때...한 줌의 재가되어 나오실 때...너무도 서럽고 아버지가 그리웠습니다...

장마비가 하염없이 쏟아지던 날...

아버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토록 보고싶어하시던 친지분들...할머니,할아버니와 함께 나란히 놓여지셨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할머니, 형제분들 만나시니 기쁘시죠"?

제수를 올리며 흐르는 눈물은 세차게 내리붓는 장마비에 씻겨 갔습니다...

 

티격태격하며 지내온 20여년...

아버지와 저는 바늘과 실이었습니다...

힘든 야당 생활에 시민단체까지 조성하여 참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 많았었습니다...

집안의 쌀독을 우선하기보단 언제나 국가와 정치 뿐이셨습니다...

 

민족주라며 항상 막걸리 외에는 다른술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상록수 협회를 조성하여 야학을 만들고 남들에게 퍼주기 좋아하시던 아버님이셨습니다...

 

밀집모자에 덥수룩히 자란 수염으로 탁배기한잔 드시며 호탕히 웃으시던 아버님의 얼굴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어렸을적 아버님이 고향에 한번 내려오시면 시골집의 마당엔 잔치가 벌어지고 수북히 쌓인 신발들을 보며 우리 아버지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정치규제에 묶이고 정권의 서슬에 늘 음지를 전전하시다 보니 우리 형제들은 배부른적보다 배고픈적이 많았습니다...

 

어느날...

어린이 날이었습니다...

"아빠"! "우리는 창경원 안가"? 하며 보채는 우리에게 아버님은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아빠가 다녀올데가 있으니 다녀오면 그때 가자"...하시고는 대문을 나가셨습니다...

점심도 거른채 해가 뉘엿뉘엿하여도 아버지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저는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습니다...

 

차가 스무여대 지나칠 무렵 그토록 기다리던 아버지께서 힘없이 버스에서 내리셨습니다...

정류장에 나와있는 저를 보듬어 안아주시며

"다음엔 꼭 창경원보다 더 재미있는곳에 가자"...

"알았지"? "아빠가 약속할께"...

 

계속 칭얼대는 저에게 아버지는 까칠한 수염이 난 턱으로 저의 뺨을 부비셨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어머님이 말씀 하시기에 알았습니다...

그 때 아버지의 마음을...

 

"애비야"..."너희 아버지가 그 때 손목시계라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융통하여 창경원 데리고 가실려고 전당포를 돌아 다니셨는데"...

"공휴일이라 문을 열어놓은 전당포가 없었더란다"...

"종로, 광화문, 인사동,청진동 바닥을 그렇게 헤메셨어도 한군데도 없었더란다"...

그 말을 어머니에게 전해 들었을 때도 코끝이 얼마나 찡하였는지 모릅니다...

 

자꾸만 철없이 보채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사무실에 찾아가면 "우리 둘째가 어떻게 찾아왔지"? 하시며 대견해 하시던 모습...

당신은 점심을 꿂으시면서도 짜장면 한 그릇 배불리 먹이시고 백원짜리 지폐한장 꼭 쥐어주시며 조심해 가라며 손을 흔드시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가 너무 보고싶습니다...

 

어머님과 저희 형제들에게 힘들기만 하였던 과거를 남기고 떠나셨지만 너무나 그립습니다...

 

이제는 오형제가 중년이 되어... 가시고 싶은것 드시고 싶은것 다....해 드릴수 있는데...

친구분들 만나시면 기죽지 마시라고 막걸리값 넉넉히 넣어 드릴수 있는데...

무에 그리 급하셔서 재촉해 가셨는지요...

 

어제는...아버님이 주무시던 자리에 누워 잠을 잤습니다...

밤새 그리움만 아버님의 베게자욱 처럼 또 남겨지고...

그렇게 오늘도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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